<보면서 배운다>
아루: 엄마, 김밥 만드는 것은 어디서 배웠어? 요리책에서 배웠어?
나: 아니. 책에서 배운 건 아닌데 그냥 알게 됐어.
아루: 그냥? 어떻게? 누가 하는 거 보고?
나: 그래, 예전에 엄마가 어릴때 대전 할머니가 김밥 싸는 것을 많이 봤지.
아루랑 소풍 김밥을 싸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동네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요리 솜씨가 좋으셨고 오빠가 반장을 계속하는 바람에 소풍날이면 큰 찬합으로 한가득 선생님 김밥까지 싸 보내곤 하셨다.
너무 오래전이라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태극문양으로 특색있게 만든 엄마의 김밥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배우러 올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요리를 맛나게 멋있게 잘 하지는 않지만 외식을 즐기지 않고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아루가 어릴 때만해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고 이유식 만들어 대는 것만으로 벅찰 지경이었는데 요즘엔 하루 세끼 밥과 반찬 뿐 아니라 떡, 빵, 피자, 과자까지 웬만한 것은 거의 집에서 만들어 먹고 있다.
학원이나 문화센터에서 배운 적은 없고 그냥 책이나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검색해 보고 엄마나 시어머님께 여쭤보기도 하면서, 때로는 요리조리 내 마음대로 시험을 해 보는 것이 나름 재미가 있다.
좌린과 아이들, 집에 놀러온 친구들에게 완전 수제, 홈메이드라며 떠벌리는 한 편에는 나 스스로 터득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자랑하고픈 마음이 있었던 건데 아루랑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 모든 것이 엄마에게서 배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조리도구도 없이 여러가지 먹거리들을 척척 해내시곤 했던 엄마
식구들이 둘러 앉아 도너츠 반죽에 주전자 뚜껑을 꾹 눌러 모양을 만들던 일
전기 냄비 속에서 카스테라가 쪄지기를 숨죽여 기다릴 때의 그 애타는 마음
김발에 김을 올려놓고 밥을 펴고 재료들을 넣으면서 잊고 있었던 오래 전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사실 엄마는 내게 음식을 가르치기는 커녕 아예 부엌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배우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기신 까닭에 우리에게는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길 바라셨고 모든 집안일은 당연히 엄마만의 일이었다.
특히나 나는 막내인데다 객지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불과 몇 해 전까지만해도 설거지조차 시키지 않으셨고 지금도 뭘 어떻게 만드는지 전화로 여쭤보면 '놔둬라, 내가 가서 해줄게'라고 말씀하실 때가 많다.
그런데 엄마 스스로가 집안일은 하찮은 거라고, 너희는 이렇게 하찮은 것은 놔두고 공부 열심히해서 더 중요한 일을 하라고 하셨지만 실제로 당신은 우리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살림을 꾸리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셨고 그에 대한 자긍심도 갖고 계셨다.
삼남매 모두에게 액을 막아준다는 수수팥떡을 열 살 생일까지 거르지않고 만들어 주신 거며 음식은 정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그런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엄마는 집안일은 하찮은 것이고 공부가 중요하다고 하셨지만
나는 엄마의 바램대로 공부를 열심히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엄마가 그랬듯이, 아이들에게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에게 몸과 마음으로 배운 게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가,
아이들은 학교에서, 책에서 배운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고 배우면서 자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월 25일에 쓰기 시작한 일기를 오늘 마무리했다.)
<달콤쌉쌀한 일주일의 휴가>
지지난 주 주말에, 제 생일은 거창에 내려가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상감월 집에서 보내고 싶다는 아루의 바램대로 거창에 내려갔다가 좌린과 나만 서울에 올라오고 아이들은 시댁에 두고 왔다.
6년만에 처음, 아이들없이 지내는 일주일의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좌린이랑 단촐하게 데이트도 즐겨보고, 블로그에 포스팅도 열심히 해 보고.
할 게 많았는데
영화는 여느 때처럼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서 보았고
언니랑 친구랑 만날 약속을 잡았다가 두 번 다 무산되었고
금요일 저녁, 일찍 퇴근한 좌린과 겨우 데이트 기회를 잡았으나 막상 밖에서 놀려고 하니 편한 집 놔두고 왜 나가나 하는 생각에 '아저씨, 아줌마가 그렇지 뭐~'라며 여느 때처럼 집에서 놀았다.
처음 이틀은 머리도 아프고 잠이 쏟아져 거의 누워서 뒹굴며 보냈고
그 다음 이틀은 이모부께서 갑작스럽게 암진단을 받는 바람에 병원에 따라다녔고
그리고 주말 이틀 동안은 다음 주에 할 어린이 미술학교 사진 강의를 준비하며 보냈다.
기대랑은 조금 달랐지만 오랜만의 백수생활(하루종일 할 일 없이 뒹굴며 지내는)이 달콤했고
이모부 병원에 다니시는데 작은 도움이 되어 기뻤고 그 덕분에 엄마까지 서울에 오셔서 엄마랑 밀린 수다도 떨고 백수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호사로운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고
사진 수업 준비를 하면서 좌린과 내가 찍은 수 많은 사진들을 들춰보며 지난 십년 간의 우리 삶을 살펴볼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통진당 사태를 보며 좌린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고
아 참, 라면, 햄버거도 맘껏 먹었당...!
애들 보고 싶지도 않니?
시어머님과 통화하는데 애들 바꿔달라고 해서 목소리라도 듣지 그러냐고, 바꿔줄까 물어보시지도 않고 바꿔달라 하지도 않는 어머님과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엄마가 몇 번이나 내게 물었다.
보고 싶지...
그렇지만 아이들이 엄마 보고 싶다고 아우성치지 않고 할머니 할어버지와 충분히 즐겁게 지내기를 바랬고 나도 나만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어머님, 아버님께서 나를 믿고 전폭적인 지지를 해 주시듯이 나도 아이들을 보내놓고 걱정이나 불안한 마음을 조금도 가질 필요가 없다, 게다가 내가 일부러 떼어 놓은 것도 아니고 아이들 스스로 정한 것인데... 부모님에 대한 믿음, 아이들에 대한 믿음,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담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 중간에 마음이 바뀌면 일주일 다 채우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들에게 말 해 주었고 실제로 어른들 모두가 그런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때가 되면 아이들을 떠나 보내야 한다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 마음'에서 핑계거리를 찾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떠나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때'가 되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면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그리 되는 것인데 어느날 갑자기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에 자꾸 미루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엄마 아빠를 떠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일주일을 보내겠다고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만큼 자랐고 또 그만큼 내게서 떠나고 있는 것이다.
매일 같이 있으면 느끼기 어려운데 이번 기회에 아이들이 자라고 떠나는 것에 생각해보고 그에 맞게 내 마음 추스리는 연습을 해 보는 것이다.
실은 아이들이랑 스카이프 화상 전화로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좀 났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며 의연해지려고 애를 썼다.
헨젤과 그레텔 동화 있잖아. 그 동화의 숨은 뜻은 아이들을 세상으로 내 보내는 엄마의 이야기래.
계모라서 나쁜 마음으로 아이들을 내쫓는 것이 아니라 매정해 보이지만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가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게 보내 주는 엄마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대.
아이들이 뒤돌아보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유혹과 덫에 빠져도 스스로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는 거잖아,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를 따돌릴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런데 힘들고 배고프다고 자꾸 엄마 품으로 돌아올 때 안타까운 마음에 받아주기만 하면 아이들이 제 스스로 무엇을 해 볼 수가 없잖아.
내가 아이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연연하면 아이들도 나를 따라 징징댈테고 그럼 모두가 편치 못해요, 내가 담담하게 잘 지내야 아이들도 잘 지낸다니까. 다른 데도 아니고 할머니 할아버니댁에, 저희들이 원해서 갔는데, 며칠있으면 돌아오는데 애태우고 걱정할 이유가 없지.
엄마한테 어디선가 들은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하며 보고 싶지만 그 마음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내 마음을 이야기 해 드렸다.
일주일이 참 긴 것 같았는데 벌써 다 지나가 버렸고 이제 하룻밤만 자면 아이들이 온다.
사실 해람이가 집에서처럼 코막히고 가려워서 잠을 잘 못잘까봐, 그 바람에 어머님이 고생하실까봐 마음이 쓰였는데
해람이 스스로 했던 말대로 밤에 깨서 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단다.
(해람이가 아루따라 거창에 남겠다고 했을 때
내가 '해람아, 너는 밤에 자주 깨서 나를 찾는데 괜찮겠어? 답답하고 가렵다고 울고 그러면 할머니도 잘 못 주무실텐데'라고 했더니
해람이가 '괜찮아, 나는 엄마랑 같이 자면 자주 깨지만 할머니랑 같이 자면 안 깨'라고 하더니만...)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섬세한(!) 보살핌으로 더 밝고 건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내가 의연해지려고 애를 쓴 것처럼 일곱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며 아이들의 마음도 그만큼 또 자랐겠지.
아이들을 만나면 '즐겁게 잘 지냈지?'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꼭 안아줘야지.
주책없이 눈물이 나지 말아야 할텐데...-_-;;;
그리하여 나의 이 달콤 쌉쌀한 일주일의 휴가도 이제 끝이다.
사진 수업 준비는 거의 마무리 되었고 빨래, 설거지, 청소 등의 집안일이 쌓여 있지만 휴가를 마지막까지 즐기기위해 내일로 미루었다.
욕조에 물을 받아 휴가동안 누적된 피로(백수 과로사라는 말이 이해가 되더라...)를 풀어 주었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며 휴가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 없이 지내는 것이 허전하고 아쉽기도 했지만
중간에 끊기지 않고 내 생각, 내 일에 골몰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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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2012/05/14 06:37 [ ADDR : EDIT/ DEL : REPLY ]추카추카
2012/05/15 06:16 [ ADDR : EDIT/ DEL ]태교에서 젤 중요한 건 마음인듯. 즐겁고 편안한 마음...
똑똑한? 전화기는 아직,
페북에서 사진, 글은 종종 보고 있소~
백수 과로사! 종종 애들 거창 보내요!!
2012/05/14 14:04 [ ADDR : EDIT/ DEL : REPLY ]해람이가 깨서 안 울 수도 있다는 말씀인데...
수업 준비 잘 되가냐는 문자 보냈을때 이모부님 병원 수발 들고 있었나 보다.
푸하하! 어제 새벽 지난 댓글에 댓글을 달면서도 채**이 누군지 몰랐다는...^^
2012/05/15 06:19 [ ADDR : EDIT/ DEL ]해람이가 집에 와서도 혼자 잠들고 깨지도 않았다는 사실~
거창의 기적이라 해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