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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하루2012/05/14 03:52

<보면서 배운다>

 

 

아루: 엄마, 김밥 만드는 것은 어디서 배웠어? 요리책에서 배웠어?

 

나: 아니. 책에서 배운 건 아닌데 그냥 알게 됐어.

 

아루: 그냥? 어떻게? 누가 하는 거 보고?

 

나: 그래, 예전에 엄마가 어릴때 대전 할머니가 김밥 싸는 것을 많이 봤지.

 

 

아루랑 소풍 김밥을 싸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동네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요리 솜씨가 좋으셨고 오빠가 반장을 계속하는 바람에 소풍날이면 큰 찬합으로 한가득 선생님 김밥까지 싸 보내곤 하셨다.

너무 오래전이라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태극문양으로 특색있게 만든 엄마의 김밥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배우러 올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요리를 맛나게 멋있게 잘 하지는 않지만 외식을 즐기지 않고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아루가 어릴 때만해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고 이유식 만들어 대는 것만으로 벅찰 지경이었는데 요즘엔 하루 세끼 밥과 반찬 뿐 아니라 떡, 빵, 피자, 과자까지 웬만한 것은 거의 집에서 만들어 먹고 있다.

학원이나 문화센터에서 배운 적은 없고 그냥 책이나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검색해 보고 엄마나 시어머님께 여쭤보기도 하면서, 때로는 요리조리 내 마음대로 시험을 해 보는 것이 나름 재미가 있다.

 

좌린과 아이들, 집에 놀러온 친구들에게 완전 수제, 홈메이드라며 떠벌리는 한 편에는 나 스스로 터득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자랑하고픈 마음이 있었던 건데 아루랑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 모든 것이 엄마에게서 배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조리도구도 없이 여러가지 먹거리들을 척척 해내시곤 했던 엄마

식구들이 둘러 앉아 도너츠 반죽에 주전자 뚜껑을 꾹 눌러 모양을 만들던 일

전기 냄비 속에서 카스테라가 쪄지기를 숨죽여 기다릴 때의 그 애타는 마음

김발에 김을 올려놓고 밥을 펴고 재료들을 넣으면서 잊고 있었던 오래 전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사실 엄마는 내게 음식을 가르치기는 커녕 아예 부엌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배우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기신 까닭에 우리에게는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길 바라셨고 모든 집안일은 당연히 엄마만의 일이었다.

특히나 나는 막내인데다 객지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불과 몇 해 전까지만해도 설거지조차 시키지 않으셨고 지금도 뭘 어떻게 만드는지 전화로 여쭤보면 '놔둬라, 내가 가서 해줄게'라고 말씀하실 때가 많다.

 

그런데 엄마 스스로가 집안일은 하찮은 거라고, 너희는 이렇게 하찮은 것은 놔두고 공부 열심히해서 더 중요한 일을 하라고 하셨지만 실제로 당신은 우리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살림을 꾸리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셨고 그에 대한 자긍심도 갖고 계셨다.

삼남매 모두에게 액을 막아준다는 수수팥떡을 열 살 생일까지 거르지않고 만들어 주신 거며 음식은 정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그런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엄마는 집안일은 하찮은 것이고 공부가 중요하다고 하셨지만

나는 엄마의 바램대로 공부를 열심히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엄마가 그랬듯이, 아이들에게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에게 몸과 마음으로 배운 게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가,

아이들은 학교에서, 책에서 배운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고 배우면서 자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월 25일에 쓰기 시작한 일기를 오늘 마무리했다.)

 

 

 

 

 

<달콤쌉쌀한 일주일의 휴가>

 

지지난 주 주말에, 제 생일은 거창에 내려가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상감월 집에서 보내고 싶다는 아루의 바램대로 거창에 내려갔다가 좌린과 나만 서울에 올라오고 아이들은 시댁에 두고 왔다.

 

6년만에 처음, 아이들없이 지내는 일주일의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좌린이랑 단촐하게 데이트도 즐겨보고, 블로그에 포스팅도 열심히 해 보고.

할 게 많았는데

 

영화는 여느 때처럼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서 보았고

언니랑 친구랑 만날 약속을 잡았다가 두 번 다 무산되었고

금요일 저녁, 일찍 퇴근한 좌린과 겨우 데이트 기회를 잡았으나 막상 밖에서 놀려고 하니 편한 집 놔두고 왜 나가나 하는 생각에 '아저씨, 아줌마가 그렇지 뭐~'라며 여느 때처럼 집에서 놀았다.

 

처음 이틀은 머리도 아프고 잠이 쏟아져 거의 누워서 뒹굴며 보냈고

그 다음 이틀은 이모부께서 갑작스럽게 암진단을 받는 바람에 병원에 따라다녔고

그리고 주말 이틀 동안은 다음 주에 할 어린이 미술학교 사진 강의를 준비하며 보냈다.

 

기대랑은 조금 달랐지만 오랜만의 백수생활(하루종일 할 일 없이 뒹굴며 지내는)이 달콤했고

이모부 병원에 다니시는데 작은 도움이 되어 기뻤고 그 덕분에 엄마까지 서울에 오셔서 엄마랑 밀린 수다도 떨고 백수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호사로운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고

사진 수업 준비를 하면서 좌린과 내가 찍은 수 많은 사진들을 들춰보며 지난 십년 간의 우리 삶을 살펴볼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통진당 사태를 보며 좌린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고

 

아 참, 라면, 햄버거도 맘껏 먹었당...!

 

 

 

애들 보고 싶지도 않니?

 

시어머님과 통화하는데 애들 바꿔달라고 해서 목소리라도 듣지 그러냐고, 바꿔줄까 물어보시지도 않고 바꿔달라 하지도 않는 어머님과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엄마가 몇 번이나 내게 물었다.

 

 

보고 싶지...

 

그렇지만 아이들이 엄마 보고 싶다고 아우성치지 않고 할머니 할어버지와 충분히 즐겁게 지내기를 바랬고 나도 나만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어머님, 아버님께서 나를 믿고 전폭적인 지지를 해 주시듯이 나도 아이들을 보내놓고 걱정이나 불안한 마음을 조금도 가질 필요가 없다, 게다가 내가 일부러 떼어 놓은 것도 아니고 아이들 스스로 정한 것인데... 부모님에 대한 믿음, 아이들에 대한 믿음,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담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 중간에 마음이 바뀌면 일주일 다 채우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들에게 말 해 주었고 실제로 어른들 모두가 그런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때가 되면 아이들을 떠나 보내야 한다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 마음'에서 핑계거리를 찾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떠나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때'가 되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면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그리 되는 것인데  어느날 갑자기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에 자꾸 미루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엄마 아빠를 떠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일주일을 보내겠다고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만큼 자랐고 또 그만큼 내게서 떠나고 있는 것이다.

매일 같이 있으면 느끼기 어려운데 이번 기회에 아이들이 자라고 떠나는 것에 생각해보고 그에 맞게 내 마음 추스리는 연습을 해 보는 것이다.

실은 아이들이랑 스카이프 화상 전화로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좀 났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며 의연해지려고 애를 썼다.

 

 

헨젤과 그레텔 동화 있잖아. 그 동화의 숨은 뜻은 아이들을 세상으로 내 보내는 엄마의 이야기래. 

계모라서 나쁜 마음으로 아이들을 내쫓는 것이 아니라 매정해 보이지만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가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게 보내 주는 엄마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대.

아이들이 뒤돌아보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유혹과 덫에 빠져도 스스로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는 거잖아,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를 따돌릴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런데 힘들고 배고프다고 자꾸 엄마 품으로 돌아올 때 안타까운 마음에 받아주기만 하면 아이들이 제 스스로 무엇을 해 볼 수가 없잖아.

내가 아이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연연하면 아이들도 나를 따라 징징댈테고 그럼 모두가 편치 못해요, 내가 담담하게 잘 지내야 아이들도 잘 지낸다니까. 다른 데도 아니고 할머니 할아버니댁에, 저희들이 원해서 갔는데, 며칠있으면 돌아오는데 애태우고 걱정할 이유가 없지.

엄마한테 어디선가 들은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하며 보고 싶지만 그 마음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내 마음을 이야기 해 드렸다.

 

 

 

일주일이 참 긴 것 같았는데 벌써 다 지나가 버렸고 이제 하룻밤만 자면 아이들이 온다.

사실 해람이가 집에서처럼 코막히고 가려워서 잠을 잘 못잘까봐, 그 바람에 어머님이 고생하실까봐 마음이 쓰였는데

해람이 스스로 했던 말대로  밤에 깨서 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단다.

 

(해람이가 아루따라 거창에 남겠다고 했을 때

내가 '해람아, 너는 밤에 자주 깨서 나를 찾는데 괜찮겠어? 답답하고 가렵다고 울고 그러면 할머니도 잘 못 주무실텐데'라고 했더니

해람이가 '괜찮아, 나는 엄마랑 같이 자면 자주 깨지만 할머니랑 같이 자면 안 깨'라고 하더니만...)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섬세한(!) 보살핌으로 더 밝고 건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내가 의연해지려고 애를 쓴 것처럼 일곱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며 아이들의 마음도 그만큼 또 자랐겠지.

아이들을 만나면 '즐겁게 잘 지냈지?'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꼭 안아줘야지.

주책없이 눈물이 나지 말아야 할텐데...-_-;;;

 

 

그리하여 나의 이 달콤 쌉쌀한 일주일의 휴가도 이제 끝이다.

사진 수업 준비는 거의 마무리 되었고 빨래, 설거지, 청소 등의 집안일이 쌓여 있지만 휴가를 마지막까지 즐기기위해 내일로 미루었다.

욕조에 물을 받아 휴가동안 누적된 피로(백수 과로사라는 말이 이해가 되더라...)를 풀어 주었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며 휴가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 없이 지내는 것이 허전하고 아쉽기도 했지만

중간에 끊기지 않고 내 생각, 내 일에 골몰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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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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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2/05/14 06:37 [ ADDR : EDIT/ DEL : REPLY ]
    • 추카추카
      태교에서 젤 중요한 건 마음인듯. 즐겁고 편안한 마음...
      똑똑한? 전화기는 아직,
      페북에서 사진, 글은 종종 보고 있소~

      2012/05/15 06:16 [ ADDR : EDIT/ DEL ]
  2. 채**

    백수 과로사! 종종 애들 거창 보내요!!
    해람이가 깨서 안 울 수도 있다는 말씀인데...
    수업 준비 잘 되가냐는 문자 보냈을때 이모부님 병원 수발 들고 있었나 보다.

    2012/05/14 14:04 [ ADDR : EDIT/ DEL : REPLY ]
    • 푸하하! 어제 새벽 지난 댓글에 댓글을 달면서도 채**이 누군지 몰랐다는...^^
      해람이가 집에 와서도 혼자 잠들고 깨지도 않았다는 사실~
      거창의 기적이라 해야 할 듯^^

      2012/05/15 06:19 [ ADDR : EDIT/ DEL ]

아름다운 하루2012/04/25 06:37

1. 감기

 

감기가 꽤 독하다.

 

사실 지난주부터 좌린빼고 세 식구 감기로 골골했는데 날씨도 좋고 꽃이 보기 좋다는 이유로 '감기쯤이야~'하면서 놀러 다니다가 월요일 저녁부터 끙끙 앓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기침, 콧물이 심했는데 열도 없고 잘 놀길래 '요즘처럼 바깥놀이 하기 좋을 때는 아프다고 집에만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 꽃도 보고 새싹도 보면서 봄기운을 느끼는 게 더 좋다'며 이리저리 쏘다녔다.
주말을 정점으로 해람이 상태가 나아지더니 이제 내 증상이 심해졌다. 월요일에 아버지 위암 정기 검진이 있어서 새벽부터 일어나 무리를 한데다 밭에 쫓아다느라 피곤했던 모양이다.
좀 쉬라는 뜻인가보다.

 

부지런히 쏘다니며 몸을 많이 쓴 것도 있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서 마음을 많이 쓴 탓도 있는 것 같다.

 

블로그에 글을 좀 써 보려고 하는데, 열흘전부터 쓰기 시작한 글도 있는데 마무리가 안된다.
게다가 티스토리 에디터가 새로 바뀌면서 적응도 잘 안되고 사진 업로드에도 문제가 있는지 관리자 화면에서는 보이는 사진들이 로그아웃한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는 문제도 있다.

 

무리하지 말고 큰 욕심내지 말고 오늘은 쓰던 글들 놔두고 그냥 주절주절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적어볼까 한다.

 

 

2. 밭에 갔다오는 길에 오랜만에 소아과에 들렀다.

 

해람이가 알레르기 비염과 아토피 때문에 잠을 잘 못 자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데 계절 탓인지 아토피가 심해져서 바르는 약을 처방 받으러 간 것이다.
병원에서 처방 받는 스테로이드는 거의 쓰지 않으려 하지만 요즘처럼 증상이 심할 때는 조금씩 발라주곤 한다.
해람이 감기 증상이 어제부터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콧물도 많지 않고 기침도 심하지 않아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해람이를 보시고 콧물도 누렇고 한 쪽 귀에 중이염이 심하다고 하셨다.
'엄마, 항생제 먹여야 할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해람이를 옆에서 쭉 지켜봐온 나로서는 해람이 상태가 차츰 좋아지고 있는 추세이고 실제로 몸의 기운이 좋아져서 약은 안 먹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그리고 3년전 아버지가 위암 수술을 받으실 때 병원에 쫓아다니면서 느낀 것인데 아무리 현대 의술이 좋다지만 그보다 제 몸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병원에 가고 의사를 만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문제가 있다면 믿고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거기에 너무 의존해서 끌려다니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병원 뿐 아니라 특정 전문가 집단에 대해 나 보다 더 잘 알겠거니 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에 온 김에 해람이 몸무게와 키를 재 보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신체 발달표에 씌어진 해람이 또래의 평균과 비교해보니 키와 몸무게가 많이 모자란다.
해람이가 이제 만으로 42개월, 세 살 반인데 몸의 크기는 딱 두 돌 평균이다.
소아과 대기실에서 해람이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아이가 해람이더러 '친구','친구' 하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인데 오늘따라 조금 속상하게 느껴졌다.
'해람아, 꼭 키가 남들만큼 커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골고루 잘 먹으면 좋겠어. 고기 먹으면 몸이 잘 자라고 힘도 세지고 채소를 잘 먹으면 네 피부도 좋아질거야. 그러니까 골고루 더 잘 먹어보자.'
해람이는 예민해서인지 가리는 음식이 많다. 그래도 크면서 좋아져서 이제는 두부도 먹고 달걀도 조금씩 먹고 채소도 더 다양하게 먹기는 하지만 여전히 양도 적고 골라내는 것도 많다.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어서 호두와 땅콩은 가까이 하지도 못하고 딱히 알레르기는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맞지 않았는지 먹고나서 토하는 일도 잦은 편이다.
사실 먹는 것에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아이가 골고루 잘 먹고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엔 끝이 없고 기대수준은 항상 현재보다 높기 때문에 그러다보면 엄마 스스로가 걱정에 휩싸이고 아이에게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잘 먹으라는 잔소리, 한 숟가락, 한 조각이라도 더 밀어 넣으려는 욕심이 아이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먹는 즐거움을 가로막는 게 될테니까...
주변에서는 아이들 밥 잘 먹게 해주는 한약, 비타민에 대해 이야기들을 하지만
잠깐, 심호흡 한 번 하고, 내가 손수 지어주는 밥을 세끼 먹이는데 나를 믿고 해람이를 믿고 기다려보자고 다짐

 

아산병원 알레르기 센터에 예약을 했다.
해람이가 잘 못자라는 것도 밤에 잠을 깊이 못 이루는 것도 피부가 가렵고 코가 막히기 때문이다. 알레르기라는 것이 특효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알레르기 검사를 해서 해람이가 무엇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지 아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지난해 가을, 그 때도 해람이가 아토피에 감기에 무척 힘들어하던 때였는데 밤새 온 몸을 긁어줘야 한다고 했더니 아버님께서 '해람이는 몸을 많이 만져줘야 하는 아이인가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하룻밤에도 몇번씩 깨서 '엄마, 긁어줘. 만져줘' 하면 나도 잠결에 귀찮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 해람이는 몸을 많이 만져줘야 하는 아이구나, 하면서 손바닥으로 몸을 쓸어준다.

 

 

2. 두려움에 관하여

 

아루는 조심성이 많은 아이다. 조심성이 많다는 이야기는 부정적으로는 겁이 많다는 말과 비슷하다.
조심성이 많아서 선뜻 나서지는 않지만 한 발 물러나서 조심스레 관찰하고 조금씩 해 보고 뭔가 자신감이 생길 때 실행에 옮기는 아이라서 아이답지 않게 신중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겁내지 말라고 다그치거나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토요일에 혼자 여성 영화제를 다녀오고나서 아이들이랑 미셸 오슬로 감독의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일요일 저녁을 먹고 다같이 '아주르와 아스마르'를 봤다.
사실 이 영화는 작년에 강동 어린이 회관에서 어린이날 상영을 해서 아이들 데리고 보러 갔었는데 아루가 중간에 너무 크게 울어서 다 못 보고 나와야했다.
일년이 지나 다시 보는데 아루가 같은 장면에서 또 울음을 터뜨렸다. 아주르가 청년이 되어 유모를 만나는 장면이었는데 파란 아라베스크 문양 바탕에 붉은 옷을 입은 유모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진 것 같았다.
피부색도 검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국적인 모습과 강렬한 색채 대비가 아루 마음에 두려움을 느끼게 한 것이다.
사실 아루는 이야기 책을 읽을 때에도 새로운 이야기를 가까이하지 않으려 하고 이야기가 갈등으로 치달을 때면 고개를 돌리거나 딴짓을 하곤 한다.

 

오늘 아침 좌린이 일찍 출장을 가는 바람에 내가 해람이를 데리고 아루랑 유치원까지 바래다 주었다.
정문에서 유치원 교실까지 오르며 문득 두려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아루를 보며 내 어린 시절 비슷했던 경험,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경험들을 떠올리게 되었고 나역시 아루처럼 겁이 많은 아이였다는 기억이 났고 지금은 어른이 되었지만 종류가 달라졌을 뿐 두려움이 극복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반쯤은 혼잣말로 아루에게

"아루야, 두려운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하고 물었다.

 

아루가 빙그레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네가 엊그제 영화보다 막 울었잖아. 사실 그건 무서운 장면은 아니었거든. 아주르가 어릴 때 자기를 길러 준 엄마나 다름없는 유모를 만난 거잖아. 기쁘고 행복한 상황인데 너는 그 장면이 무서웠잖아. 네가 왜 그 장면에서 왜 그렇게 두 번이나  울음을 터뜨렸나 내가 곰곰 생각해보니 유모의 모습이 낯설고 우리랑 다르게 생겨서 그런 것 같아. 그 생각을 하다보니 두려운 마음도 누군가 혹은 무엇이 우리를 무섭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감정이 아닐까 싶네."

 

그러면서 지난번에 같이 읽었던 이현주 목사님의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에서 '저는 왜 자꾸 후회를 하게 될까요?'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되었다.

"이현주 할아버지가 후회를 안하려면 어떻게 하면 된다고 하셨지?"

"후회를 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니까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내가 후회를 하지 않으면 된다고!"

아루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치, 두려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무섭고 두려운 상황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내 마음 속 두려움은 내가 만드는 것이거든.

아루랑 이야기하며 내 마음 속 두려움들을 마주할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아루랑 이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만큼 아루가 자라고 있다는 생각에 흐뭇하기도 했고.

 

간밤에 일찍 곯아떨어졌더니 새벽에 일찍 잠이 깨었다.
잠깐 앉아있다가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는데 글 몇 줄 쓰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네.
비가 온다고 하는데 오늘은 아루의 첫 소풍날이다.
김밥을 제 손으로 싸 보겠다고 벌써 일어났다.
이제 그만 김밥 준비하러 가야겠다.
아름다운 하루,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아루 이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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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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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채**

    이번 감기가 진짜 오래가요!
    나도 지지난 주 토요일 부터 기침을 해서 오늘까지 이러고 있거든...
    어제 처음 분양 받은 주말 농장 가봤는데
    너무 더웠어요. 할 수 있을까???

    2012/04/30 17:20 [ ADDR : EDIT/ DEL : REPLY ]
    • 주말 농장 잘 하고 계시죠?
      이제 3년차로 접어드니 뭘 좀 알겠다, 텃밭 농사 그까이꺼~ 이런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네요. 생각해보면 둘째 태어났을 때 첫째의 경험으로 인한 자신감이 잘 먹히지 않던 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도, 벌레가 너무 심해 몇 번 밭을 다시 갈아도, 밭에 빈 곳이 많다고 좀 더 활용해 보라고 텃밭주인 아저씨가 압박을 해와도 느긋할 수 있는 여유, 그게 좀 생기네요. 농사는 내 마음 먹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 땅, 비, 바람, 자연의 뜻대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하죠. 더운데 쉬엄쉬엄 하세요.
      오늘 할일은 내일로 미룬다... ㅎㅎ

      2012/05/14 03:51 [ ADDR : EDIT/ DEL ]

아름다운 하루2012/03/04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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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A4 종이를 접어서 아루가 만든 책
제목은 '하트 하트 맛있다.'
한 편의 시 같다.


나만의 비밀로 내 공이 가장 쎄...

얼마전 조카들이 놀러왔을 때의 일이다.
여섯 명의 아이들이 어울려 놀고 있었는데 아루가 울상이 되어 나를 찾아왔다.
"엄마, OO오빠가 일곱 살이 만든 공은 약해서 놀이에 끼워주지 않을거래."
아이들이 아이클레이(합성점토)로 탱탱볼(통통 튀는 공)을 만들어서 자기가 만든 공이 제일이라고 자랑을 하며 놀고 있었는데 아루보다 두 살 많은 조카 아이가 아루가 만든 공이 안 좋다며 약을 올린 모양이다.
우리 애가 다른 애들이랑 놀다가 스스로 느끼기에 부당한 일을 겪을 때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고 내가 나서서 정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아루의 일이고 스스로 해결하도록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 진짜? 그런 말 들으면 정말 속상하겠다.
속상한 마음을 봐주고 보듬어 주지만 내가 먼저 나서서 아이들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름의 원칙이다.
누가 그래, OO가? 할머니가 혼내줄께~
OO가 짓궂어서 그렇지. 그냥 모른척해.
옆에 있던 할머니, 외삼촌, 어른들이 앞다투어 아루를 위로했다.
사실, 나는 아이들 문제에 이보다 조금 더 진지한 편이다.
내가 OO를 혼내줄까? 진짜 OO를 혼내주기보다 OO로 인해 속상한 아이를 달래주기 위한 수단으로 이런 말들을 하는데 진심으로 OO를 혼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이를 달래보려고 하는 말이기에 진정성이 부족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의 마음을 달래지도 못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가끔 아이가 지나치게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때 상황을 희화화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상대방 아이에 대한 평가나 아이들 사이에 벌어진 상황에 대한 언급은, 내가 직접 겪은 것이 아니기에, 물론 팔은 안으로 굽으려하고 우리 아이가 한 말을 토대로 내 나름 상황을 파악하고 있긴 하지만, 되도록 말을 아낀다. 그래야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어른들이 나서서 아루를 위로해 주었고 다행히 아이들을 불러다 잘잘못을 따지며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 나는 아무 말 않고 그냥 물러서 있었다.
한참 지나서 대식구 먹을 저녁 준비를 하느라 바빠 잊고 있다가 아루가 눈에 띄어
아루, 기분 좀 나아졌어? 하고 물었더니
내게 다가와 '엄마, 나만의 비밀로 내 공이 제일 쎄.'라고 말하는데 아루의 눈꼬리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렇구나, 네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지.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내가 생각하기에 부당한 기준을 내세워 나를 폄하한다면, 나는 아루만큼 의연하지 못할 것 같다. 네가 말하는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따지고, 내가 그렇게 형편없지 않다고 항변하는데 급급할 것 같은데... 물론 그렇게 따지고 항변한다고 상대방이 수긍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루가 대견하다는 생각에 잠자리에 누웠을 때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나: 아루야, 아까 네가 OO가 한 말에 상처 받았는데 네가 너만의 비밀로 네 공이 제일 세다고 생각한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히 속상하고 위축되고 그러는데. 나도 그런 일로 괴롭고 속상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너처럼 그렇게 좋은 생각을 못했었네.
아루: 엄마,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좀 나쁜 점이 있어. 사실은 입이 근질근질하거든.
나: 그렇지, 누구나 다른 사람한테 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좀 답답하지?
아루: 하지만 괜찮아. 나는, 뭐, 엄마한테 다 일러주면 되니까.
엄마인 내가 인정해주는 것으로 괜찮다고 하는 말에 다시 한 번 가슴이 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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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해람이가 그린 기차

언젠가 해람이가 말놀이를 즐겨한다고 적은 적이 있는데 요새도 좀 엉뚱하고 재치있는 말을 해서 사람들을 웃기는 재주가 있다.

지난 여름(2011년 8월) 아루와 함께 네비게이션 소리를 따라하던 중
네비게이션: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아루: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해람: 전방에 바둑방구가 있습니다.

중국요릿집에 갔을 때 숫자를 세보라고 했더니
해람: 하나, 둘, 셋, 넷, 다섯...
나: 그 다음은??
(여섯부터 헷갈려하곤 했을 때라서 해람이가 여섯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듣는 사람들이 긴장하고 있는데)
해람: 탕수인가?

아루와 아루 친구들의 한자배틀에 한마디 거들어,
아루: 바람아 불어라, 바람 풍
아루 친구: 멈춰라, 멈출...
(생각이 안나서 주저하는 사이에)
해람: 멈출 !

차이나팩토리에서 '오리지널 탕수육'을 먹고 온 다음.
엄마, 이제부터 이 색깔은 '오래지날' 색이라고 하자.

새해가 되면서 해람이가 '우와빠'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되었다. '우와빠'는 일년 넘게 해람이가 자기를 지칭하는 일인칭 대명사로 쓰던 말이었는데 어느 순간 해람이 말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 해람아, 우와빠는 어디갔어?
해람: (너무도 태연하게) 응, 옷장에서 옷정리하고 있어.

해람; 엄마, 나는 쭈꾸미야.
나: 어제는 괴물이었잖아. 왜 갑자기 쭈꾸미가 되었을까?
해람: 응, 쪼끄매서 쭈꾸미야.

날마다 아이들이 하는 말들에 웃고 울고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까 먹는다.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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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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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진

    아루, 역시! 내공이 있다니께..
    아루의 역사적인 유치원 입학은 어찌 잘 하셨는지요?
    시우는 오늘 함양군에 있는 유치원생들을 다 모아놓은 것만 같은 유치원에 입학했어요.
    미루는 금요일에 1학년이 되었고요.
    1년쯤 걸리지 않겠나.. 하면서 하루에 한 개씩 놀이하듯 정리하고 있는데도 저녁이면 피곤해서 다들 골아떨어져요. ㅎㅎ
    미루 입학식에서 나는 스마트폰을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잃어버려서 아직도 못 찾고 있고...

    여기는 비가 계속 오는데 서울은 어때요?
    곧 함양에서 만날 날을 기대해요. ^_^

    2012/03/05 17:15 [ ADDR : EDIT/ DEL : REPLY ]